일상-단순하게 살자

산책 일기 - 2021. 04. 17

꿀짱이 2021. 6. 10. 11:36
반응형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이 있지.

지난 몇 년, 4월만 되면 이 말을 떠올리게 됐다.

 

재작년에는 아빠가 돌아가셨다.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2019년 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작년 4월에는 엄마가 맹장 수술을 받으셨다.

코로나 때문에 난리가 났던 때라 처음 간 병원에서는 의사를 보기는 커녕 응급실 문턱도 못 넘어보고 돌아서야했다.

두 번째로 간 병원에서는 건물 밖 임시 진료소에서 흉부 엑스레이 찍고 열 있는지 확인하고서도 한 시간 넘게 대기하다가 겨우 응급실로 들어갔다.

응급실에서도 복부 엑스레이 찍고는 무한정 대기.

결국 8시간 넘게 기다리기만 하다, 응급이 아니라 자기네 병원서 당장 수술하기 힘들다며 다른 병원 가라고 해서 자정 무렵 세 번째 병원으로 이동, 다음 날 아침 일찍 수술을 받았다.

응급 아니라더니 수술 후 의사 쌤 얘기가 천공까지 생겼다더라.

제길.

 

올해 4월에는 땅콩이가 하늘나라 갔다.

두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땅콩이 얘기하려니까 눈물 나려고 한다.

 

불법이라고는 하지만 차마 땅콩이를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릴 수는 없어서 뒷산 한적한 곳에 묻어줬다.

그다음부터 매일 땅콩이를 보러 가서 산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게 습관이 돼버렸다.

4월 초라 사방이 파릇파릇하고 햇빛은 어쩜 그리 좋은지...

날이 너무 좋으니까 더 슬프더라.

한동안 눈은 퉁퉁 부어 갖고 훌쩍거리면서 산을 헤매고 다녀서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쳐다보더라는...

 

그렇게 매일매일 산을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이제는 산에 가는 게 좋아서 별일 없고 비만 오지 않으면 매일 간다.

제일 높은 곳이라고 해봐야 7분이면 올라가는 뒷동산이지만 저수지도 끼고 있고 여기저기 샛길도 있어 아직은 돌아다니며 지루한 줄 모르겠다.

무엇보다 매일 한 시간 이상 걸어다니다보니 체력이 좋아지고 뱃살도 줄고 있다.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 냄새 나는 공기 들이마시고 햇볕도 쬐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시간이, 땅콩이가 주고 간 선물 같다.

처음에는 발 밑의 땅만 보고 걸어다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똑같아 보이는 풍경 속에서도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다가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블로그에 이런 일기까지 쓰고 있다.

 

4월 17일.

땅콩이에게 들꽃을 심어준 날부터 시작이다.

 

반응형